내 힘과 능력만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것에 영향을 받고 휘둘릴 때가 많다.
주님의 영향력과 힘으로 산다 하지만 그에 있어서도 세상의 가치나 마음 상태에 따라 흔들리기도 한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세상과 동떨어진 경건을 유지하며 산다 자신할수 없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 변화하고 예수님께만 영향받고 예수님만 의지하여 살아야만 끝까지 버틸수 있다.
9, 22, 26. 세 번에 걸친 기록.
초대교회의 역사적인 상황을 생생히 전해주는 말씀이다.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는 사울의 모습.
스데반의 죽음을 책임지겠다 앞서 나서며 그 도를 따르는 자들을 잡는데 더 열심을 내는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 여겼다.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다하며 헌신을 결단하고, 지금 하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겨 잔당을 궤멸하려 했다. 위험한 확신. 자기 주도와 자기 열심.
구체적인 정황이나 내용은 다를수 있으나 믿음으로 열심을 내나 예수님보다 내 열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있지는 않은가.
(행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 9: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다메섹 근처에 왔을 때, 거의 도착할 무렵 하나님께 잡힌 것.
네가 한 일은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 알려주신다.
함꼐 있던 사람도 인지할수 있었다. 빛과 소리. 그러나 그 진의를 깨달은 것은 사울뿐이었다.
이는 사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요 자비의 계시로, 사울에게 개인적이며 인격적으로 찾아와 변화할수 있도록 하셨다.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한 측면에서 주인공은 사울이 아니라 그를 바꾸신 예수 그리스도.
(행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 9: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열정으로 다메섹으로 향하던 그가 이제는 물리적으로 볼수없게 되어 누군가에게 끌려 다메섹에 들어가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예수를 만난 뒤 인생이 재정립되었다. 자기열심으로 살던 자가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간다. 잡으러 다니던 예수의 사람들과 같은 길에 들어섰다.
과거에 내가 쓰임받았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주의 손에 이끌리며 그의 도우심을 구하는 인생.
매 순간 이 말씀에서처럼 주님이 어떤 분인지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로인해 살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 없이는 살수 없다며 엎드리길.